트럼프리즘 이후, 고장 난 세상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1. 고장난 세계의 징후들
트럼프는 하나의 개인이자, 하나의 신호다.
그는 쇼처럼 정치를 소비했고, 그 정치 쇼는 미디어, 자본, 기술과 손잡고 현실 자체를 연출하는 권력이 되었다.
관세를 유예하거나 협박하는 발언 하나로 세계 증시가 요동친다. 그의 말은 가벼우나, 그 가벼움은 전 지구를 흔든다.
이건 단순히 트럼프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는 시스템이 만든 괴물이며, 동시에 그 시스템을 강화하는 아이콘이다.
그의 존재는 다음과 같은 현실을 드러낸다.
• 법치주의는

권력 앞에서 무기력해진다.
• 시민은 감정적이고 소속 중심으로 정치에 동원된다.
• 정치인들은 극단적 상업주의와 미디어 전략가로 변신한다.
• 정치는 상품이 되고, 미디어는 쇼가 되고, 진실은 소비된다.
2. 우민화되는 시민들
문제는, 이에 대한 저항의 힘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줄고, 토론의 장은 사라지고, 영상은 점점 짧아진다.
‘생각할 시간’ 대신, ‘즉각 반응할 감정’만 남는다.
시민은 생각하는 존재에서, 반응하는 소비자가 된다.
• 관계는 줄어들고, 커뮤니티는 해체된다.
• 지역은 중앙에 종속되고, 소국과민은 더 이상 꿈꾸어지지 않는다.
• 협동의 도시 원주마저도 경제지향 도시가 되고 결국 중앙화되고, 다르게 사는 힘이 줄어든다
3. 문화와 예술, 마지막 저항의 언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 문학, 철학은 여전히 필요하다.
사실 오늘날 철학자는 정치인이 아니라, 음악가이자 미술가, 무용가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여전히 이 세계를 감각하고 질문한다.
하지만 관객은 극소수. 대부분은 스크롤을 내리고, 쇼츠를 소비한다.
예술은 외롭다.
하지만 예술은 시간을 거슬러 남는 유일한 언어다.
오늘의 권력자들은 신권위주의자가 되며, 시민을 ‘관리’하려 한다.
이 흐름 속에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이 고장 난 세상에서, 어떻게 우리는 인간다움을 지킬 것인가?”
4. 대책, 혹은 느린 응답
• 공동체를 복원할 상상력을 되살려야 한다.
• 독서와 대화, 사색과 예술의 힘을 ‘사치’가 아니라 ‘생존’으로 여겨야 한다.
• 아이들에게는 기술보다 ‘생각하는 능력’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
• 작은 공동체, 느린 삶, 낮은 권력 구조는 여전히 유효한 대안이다.
• 무엇보다도, 이야기를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역사는 언제나, 소수의 이야기꾼으로부터 다시 시작되었다.